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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역사

남양주의 역사

남양주시는 지리적으로 경기 동북부지역에 위치하며 녹색 문화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동북쪽으로는 북한강을 사이로 가평군과 양평군, 서쪽으로는 왕숙천ㆍ불암산ㆍ수락산을 경계로 구리시와 서울특별시 노원구, 북쪽으로는 운악산ㆍ서리산을 경계로 의정부시와 포천시, 남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양평군ㆍ광주시ㆍ하남시와 접하고 있다.
시 전체는 동북쪽으로는 주금산ㆍ서리산ㆍ축령산ㆍ운길산에,서쪽으로 운악산ㆍ수락산ㆍ불암산에 에워싸여있고, 그 가운데 천마산이 솟아있다. 남양주는 지리적으로 북부지역에 산이 많고 남부지역에 구릉이 많으며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남양주시는 '녹색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남양주시는 역사적으로 양주의 남쪽과 기타 인접한 시ㆍ군과의 행정구역 통폐합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따라서 현재 남양주시만의 독자적인 역사 형성과정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양주를 중심으로 특히 진접ㆍ진건 일대인 풍양에 초점을 맞추어 남양주지역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남양주지역은 호평ㆍ평내 선사유적과 수석리 토성 등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한강을 중심으로 선사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으로 고리국(古離國)에 속하였다가 삼국시대에는 백제ㆍ고구려ㆍ신라 삼국이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던 군사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근의 아차산 유적은 백제와 고구려의 접전지역으로 유명하며, 고구려가 이 지역을 점령하였을 때 진접일대는 한산주(漢山州) 소속 북한산군(北漢山郡)의 골의노현(骨依奴縣)이었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9주 5소경을 설치하면서 한주(漢州)의 한양군(漢陽郡)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한양군에 속한 황양(荒壤)으로 지명이 바뀌었다가 이후 풍양으로 불리었고 양주 또는 남경(南京)으로 불리면서 군사적 요충지에서 점차 행정적인 성격이 강한 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그 주변에 위치하게 되어 모든 생활 영역이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오늘날의 서울지역에 있던 양주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서울 외곽의 큰 군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 남양주는 양주의 속현인 풍양현에 속하였으며, 대부분의 지역은 양주와 직ㆍ간접적으로 연관을 갖고 있었다. 중종대 이후에는 현이 폐지되면서 양주의 직할지로 변하였다.

풍양은 서울의 인접지역으로 세종대 풍양궁이 조성되어 왕의 왕례가 빈번하였으며, 묘적산과 운악산 등 수려한 산수와 자연경관으로 인하여 왕실의 사냥터나 강무장(講武場)으로 이용되었다. 한강 유역은 세곡선의 운반 등 강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지역간의 경계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현재 와부읍 팡당리와 조안면 능내리 지역은 광주와 양근에, 수동면의 일부 지역은 가평군에, 집접읍 부평리 지역은 포천시에 속하기도 하였다. 즉 남양주지역은 풍양으로 대표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양주,광주,양근,포천,가평 등과 서로 연결되어있었다.
이후 1906년 광주군 초부면의 편입과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거치고, 1963년에 수동면이 신설되면서 읍ㆍ면단위에서 현재의 편제와 유사한 형태를 갖추었으며, 1980년 4월 1일 양주군ㅇ서 분리되어 남양주군이 신설됨에 따라 독자적인 행정구역을 갖게 되었다. 1980년에는 구리읍이, 1989년에는 미금읍이 각각 시로 승격되면서 남양주군에서 분리ㆍ독립되었고, 이후 1995년 1월 1일에는 미금시와 남양주군이 통합되어 남양주시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