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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원 산대놀이

산대놀이는 한양을 중심으로 수도권 중부지방에서 발달한 가면극을 지칭한다. 전국적인 규모에서 보면 해서지역의 탈춤, 영남지역의 아류와 오광대, 중부지방의 산대놀이 등이 분포한다. 각기 용어의 차이가 있으나 가면을 쓰고 민중의식을 담은 극적 갈등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 광해군 때 산대도감이 설치된 바 있는데 ‘산대’란 ‘산과 같이 높은무대’라는 뜻으로 주로 외국사신을 영접할 때나 제례 잔치 등 왕실의 각종행사 때 국가적 차원에서 행한 여흥 행사였으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왕실에서 폐지하자 연희자들이 호구지책으로 송파, 애오개 등 사대문 밖 장터에서 연희하게 되면서 민간에 확산되어 지역화된 놀이라 할 수 있다. 이때 퇴계원 산대놀이도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양주시 퇴계원은 조선시대에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온 행인들이 한양의 동대문으로 들어가는 직통로였고, 한양으로 공급되는 숯ㆍ장작ㆍ건축재ㆍ곡식ㆍ채소ㆍ연초 등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래서 퇴계원은 마행상인들의 상업근거지가 되었고, 여관과 음식점ㆍ푸줏간 등 100여 호의 상점들이 왕숙천을 끼고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우시장이 번성했다. 또 주민들 가운데에는 주로 연초가공업자와 장작상이 많아 담배와 장작을 서울에 공급했던 곳이다. 이와 같이 교통의 요충지이며 물화가 번성한 시장터였던 퇴계원은 산대놀이와 같은 가면극의 발달지가 갖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때 산대놀이가 연행되었다는 기록 이후 1920년대 일제가 민간의 연초상을 금하는 상업폐지 정책과 미신타파라는 명목으로 군중이 모이는 집회 금지 및 조선의 전통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에 의해서 퇴계원산대놀이도 급속하게 쇠퇴하게 되었다.

그후 해방되던 해 추석에 마지막으로 다시 공연되기도 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놀이꾼이 대부분 작고하고 수 명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양주별산대놀이의 놀이꾼들을 불러와서 합동으로 공연했다고 전한다.

한편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잇는 퇴계원산대놀이의 가면16개 가운데 먹중탈은 뒷면에 ‘양주군 퇴계원리 산대도감 사용’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서 산대놀이의 중요한 특징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퇴계원산대놀이의 실재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증거가 되고 있다.주요 고증 제보자 백황봉(1911년생)ㆍ최사윤(1912년생)옹이 따르면, 퇴계원산대놀이는 주로 정월 보름과 사월 초파일ㆍ단오ㆍ백중ㆍ추석 때와 봄 농한기에 주로 왕숙천의 모래마당(현재 군부대 앞)에서 놀았다고 한다. 놀이꾼들은 풍물패와 함께 마을을 돌면서 공연을 알리고, 서낭당에 들러 고사를 지낸 후 왕숙천 놀이장소로 모였다.
봄 농한기와 4월 초파일에는 연초상ㆍ음식점 등이 상인들이 돈을 대서 박춘재ㆍ송만갑ㆍ이동백 같은 소리꾼들도 초청하였으며 백중이나 추석때에는 송아지를 상품으로 걸고 씨름대회를 열었으며, 산대놀이ㆍ광대 줄타기ㆍ남사당놀이등을 즐기며 밤새도록 놀았다고 한다. 씨름과 산대놀이는 현재 군부대 앞 모래마당(유원지)에서 했고, 줄타기와 남사당놀이는 역전 마당에서 공연 했다고 말한다.

근래에 들어 지역에서 전통문화를 복원하자는 취지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를 구성하여 복원작업과 전승 공연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퇴계원산대놀이는 일반의 가면극과 같이 앞놀이ㆍ본놀이ㆍ뒷놀이의 3단계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앞놀이(길놀이)는 대동놀이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제의적 성격과 신명놀이적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는 마을 전체의 구성원에게 놀이가 있음을 알리고 거기에 정서적 동참과 호응을 유도하는 것이다.대동놀이와 신명놀이는 길놀이에서 구체화된다.
또 길놀이를 마친 후 본놀이에 앞서 유교식 고사를 지내는 것은 가면극이 제의적 엄격성에 기초하고 있을을 말해준다. 또한 앞의 제의적 성격은 뒷놀이의 미얄할미 원혼을 달래는 무당식 굿놀이에서 상호 대응을 이룬다. 무당굿놀이를 통해서 신명풀이와 한풀이의 실상을 그래로 보여준다.
본 놀이는 12마당으로 이루어지느데 대체적으로 세 가지 커다란 주제로 되어 있다.
첫 번째는 노장 이하 중들의 타락을 풍자하는 과장으로, 무념무상의 경지를 보여주는 노승을 젊고 힘이 절륜한 취발이가 과감하게 격파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양반과 말뚝이의 대결을 통해서 상층과 하층의 계급 문제를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말뚝이와 함께 의막사령이라는 쇠뚝이가 풍자에 동참함으로서 풍자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세 번째는 신할아비와 미얄할미의 갈등을 통해서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산대놀이가 민중의 의식을 표출하는 연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뒷놀이는 일명 뒷풀이라고 하는데 놀이꾼과 구경꾼이 하나가 되어서 신명을 풀고 크게 화합하는 잔치의 성격이 짙다. 이처럼 앞놀이ㆍ본놀이ㆍ뒷놀이로 짜여진 퇴계원산대놀이는 가면극의 정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퇴계원산대놀이는 산대도감 계통의 탈놀이와 공통된 내용으로 구비문학과 같이 파계승ㆍ몰락 양반ㆍ무당ㆍ사당ㆍ하인 및 기타의 노유 선민들의 등장을 통하여 현실 폭로와 풍자ㆍ호색ㆍ웃음과 탄식을 보여주며, 그 주제는 크게 나누어 파계승놀이와 양반놀이를 통하여 서민생활의 애환을 연극을 통해 표출하고 달래주는 민중들의 가면놀이라 할 수 있다.

퇴계원산대놀이는 지난 1990년대 말, 60여 년 만에 복원되어 남양주시 다산문화제 출연공연 및 단오정기공연을 비롯하여 전국 각징서 초청공연을 갖는 등 매년 7~8회의 활발한 전승 공연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꼬한 앞으로 지속적이 고증작업으로 원형 보존과 전승 공연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복원 공연되는 순서에 따라 12마당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길놀이(거리굿) -서막고사-
  1. 상좌춤
  2. 옴중과 상좌놀이
  3. 먹중놀이
  4. 연잎과 눈끔적이놀이
  5. 침놀이
  6. 애사당놀이
  7. 팔먹중과 노장놀이
  8. 신장수놀이
  9. 취발이놀이
  10. 의막사령놀이(청지기 : 말뚝이놀이)
  11. 포도부장놀이
  12.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놀이
뒷놀이